건과 퍼웰이 1993년에 출간한 『히브리 성경의 내러티브』는 성경 내러티브의 문학비평과 역사비평의 상호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책 중에 하나이다. 이들은 ‘이야기’(story)와 ‘내러티브’(narrative)를 구분하는데 이야기를 내러티브보다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성경 내러티브의 특징을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내러티브는 “인물과 인물의 말, 행동, 관계, 욕망, 사상, 제도”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 내러티브에는 ‘시간’이 중요하다. 장르나 진리 진술이나 권면과는 달리 내러티브는 ‘플롯’을 갖고 있다. 플롯은 원인과 결과처럼 일련의 행동들이 시간 속에서 연속해서 나타난다. 셋째 내러티브에는 “반복이나 수사 어구들과 같은 언어의 패튼”을 즐긴다. 이 세 가지 영역을 다루는 것이 이들의 책의 주된 내용이다.
건과 퍼웰은 역사비평의 약점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내러티브 연구방법을 역사비평과 거리를 둔다. 이들은 역사비평은 이스라엘 종교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했지만 연구결과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본다. 양식비평은 이야기 자체의 내적인 작동원리를 탐색하기 보다는 양식과 장르와 같은 형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양식과 장르에 대한 연구가 도움은 되지만 성경에 나타난 복잡한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많다고 본다. 역사비평에서 “실제로 발생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오직 발생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꾼(역사가)의 관점에서 본 이야기만 있을 뿐”이라고 본다. 또 역사비평에서 원래의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성경 이외의 자료의 빈약으로 말미암아 이들의 논리는 순환논리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들이 자료를 분석하는 방법은 종종 자의적이어서 심미적 영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추구하는 ‘원본’의 추구 자체가 문제가 있는데,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고 있는 “최종적인 형태의 정경을 무시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안고 있다.
건과 퍼웰은 역사비평방법과는 달리 최종적인 형태의 텍스트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옛날 역사를 재구성하려고 하지 않고 현대 소설을 읽듯이 성경의 내러티브를 읽고 분석을 시도한다. 원래의 맥락 속에서 하나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는 다의적이고 그래서 이의 의미들은 해석자와 불가피하게 엮여있어 철저히 맥락”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들의 접근은 반드시 ‘독자중심의 접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역사비평에서 추구하는 해석의 객관성을 부정하고 ‘독자의 주관성’을 인정하게 된다.
건과 퍼웰에 따르면 성경 인물묘사는 ‘문학적 관습’의 제약을 받는다. 텍스트의 힘은 인물묘사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역사에 달려있다고 본다. 즉 이는 텍스트의 힘이 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강력한 행위의 패튼”인 플롯에 달렸다는 말이다. 성경에 때로는 저자와 해설자의 구분이 쉽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들 간의 구분이 분명하다고 건과 퍼웰은 본다. 왜냐하면 역사비평의 관점에서 보면 창세기에서 열왕기하까지의 저자와 편집자를 규명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지만 해설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과 퍼웰은 해설자는 ‘허구적인 인물’로 본다. 그래서 해설자를 등장인물과 비슷한 범주로 여긴다. 해설자는 “이야기를 말하는 한 인물”이고 다른 인물들은 “내러티브 속에서 활동하는 인물”로 여긴다. 해설자가 이야기를 통제하기 때문에 해설자의 관점이 이야기 전체를 지배한다고 본다. 그리고 스테른버그의 견해를 빌어 성경의 해설자는 절대적으로 신뢰할만하기 때문에 성경은 항상 진리를 말한다고 본다. 이들이 말하는 ‘신뢰성’은 “절대적인 진리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이야기 세계 속에서”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인물의 경우는 올터의 견해를 빌어 “신뢰할 수 있는 경우가 있고 신뢰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올터의 신뢰도의 측도에 따른 분류를 받아들이고 있다. 인물묘사는 “인물의 말을 통해서” 하기도 하고, “맥락과 대조를 통해서” 인물을 묘사하기도 한다.
플롯에 대해서 이들은 “내러티브 의미가 소통되는 조직화하는 힘 혹은 원리”라고 정의를 내린다. 플롯은 “독자의 구성적 감각”에 의존하는 “시간의 연속” 위에 세워진다. 플롯은 “다르거나 미완성의 자료”를 통해 구성됨을 피터 브룩스(Peter Brooks)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내러티브는 지연되거나, 부분적으로 채워지거나, 연장된 의미에 의존한다.” 플롯의 구조는 ‘서설, 갈등, 절정, 해결’이라는 기본적인 도식을 따른다. 때로는 이런 기본 구조를 넘어 “한 개 이상의 갈등과 한 개 이상의 절정”이 나타는 경우도 있다. 최근 플롯 이론에 도입된 “프로이드의 쾌락 원리”를 받아들여 플롯의 패튼을 설명한다. 이에 의하면 플롯은 “목표를 향해” (goal-oriented) 구성되어 있어 독자는 목표에 도달해야 이야기한 것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기에 독자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내러티브를 읽게 된다고 본다. 독자는 목표에 도달하게 될 때 “의미를 얻게 되고, 완성된 느낌을 갖게 되고, 끝이 났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독자로서 내러티브에 끌리는 것은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여정 과정 중에” 매력을 느낀다. 또 성경의 내러티브는 시작에서 끝으로 향해 말끔하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반복된 이야기들도 등장하고 때로는 시간적 흐름이나 인과적인 관계가 깨어지기도 한다. 성경의 내러티브는 전통적인‘시작, 중간, 끝’의 구조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창세기에서 사무엘까지 읽어보면 “한 이야기의 끝은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더 큰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개별 내러티브가 시작, 중간, 끝의 플롯을 갖고 있지만 더 큰 플롯의‘하위 플롯’(sub-plots)이나 ‘에피소드’(episodes)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의 내러티브의 단위를 정하는 것은 해설자의 기법보다는“독자가 재구성하고자 하는 욕구의 산물”이라고 건과 퍼웰은 본다.
건과 퍼웰은 내러티브에 있어서 언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언어를 ‘미끼’(lure)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언어는 우리를 유혹한다. 한 어휘에서 또 다른 어휘로, 한 의미에서 또 다른 의미로, 문자적인 것에서 은유적인 것으로, 한 본문의 일부분에서 또 다른 본문의 일부분으로, 한 본문에서 또 다른 본문으로 우리를 유인한다.” 텍스트가 우리에게 미끼를 던지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특정한 언어를 의미를 위한 미끼를 선택함으로써” 이를 통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건과 퍼웰은 언어라는 미끼를 “텍스트와 독자가 의미의 획득을 위해서 서로 이용하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런데 이들은 언어라는 미끼는 “의미와의 절대적으로 고정된 관계”를 갖지 않고 “항상 다른 말들과 관계 속에서” 의미가 결정된다고 본다. 또 어휘가 갖는 다면성 때문에 내러티브 속의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래서 때로는 “어휘의 모호성을 내포하기도 하고, 한 어휘 안에 두 개 이상의 의미가 동시에 공존”하기도 한다. 또 어휘의 ‘문자적인 의미’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들어가게 되면 ‘은유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건과 퍼웰은 성경과 이념과의 관계를 ‘독자와 책임’이라는 제하에 다룬다. 성경은 “가부장제, 민족주의, 엘리트주의” 등과 같은 이념도 내포하고 있지만 “이들 이념들이 얼마나 유약한 것인가를 또한 아이러니와 상반된 목소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들이 이런 가부장적인 제도나 인종적 국수주의나 엘리트주의가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편향된 이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들을 통하여 당시 문화에 편향된 관점에 대한 균형을 맞추고 있다.
건과 퍼웰의 저술에 대해 코긴(R. Coggins)은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 책 제목을 『히브리 성경의 내러티브』라고 이름을 지었기 때문에 이것이 마소라 사본을 의미하는지 구약성경을 의미하는지 모호함을 갖고 있다. 둘째 건과 퍼웰은 열린 마음으로 접근한다고 하지만 이들의 독법에는 어떤 성향을 선호한다는 인상을 준다. 예를 들면 창세기 2-3장을 남성중심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왜 이를 잘못된 것으로 거부해야 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김진규, <구약성경에서 배우는 설교 수사법>에서 인용; 각주 정보는 저서 참조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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