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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띠셀톤의 <두 지평>의 치명적 약점은 무엇인가?


지금부터 약 20여년 전 박사과정 시절에 종합시험을 치기 위해서 Anthony Thiselton의 The Two Horizons를 읽었다. 책을 읽은 후 해석학 담당교수인 포이트레스 교수님을 찾아가 질문을 했다. 띠셀톤의 두 지평에는 저자의 지평이 없는데 이는 이 책의 치명적인 약점이 아니냐고 질문을 했다. 포이트레스 교수님은 질문을 들은 다음 이 책의 약점을 인정한 후 이 책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책을 소개해주었다. 동일 저자의 New Horizons in Hermeneutics(해석학의 새 지평들)라는 책이었다.



최근에 띠셀톤의 The Two Horizons가 다시 번역이 되었다. 이 책의 해석학적 가치는 이미 학계에서 인정을 하고 있다. 번역자의 수고로 최근에 다시 잘 번역이 된 점을 환영한다. 그런데 이제 신학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도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내 경험으로는 이 책은 박사과정에서 해석학을 전공하면 볼 만한 책이다. 해석학적, 철학적 지식이 없으면 읽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책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석학 각 분야의 상당히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당한 해석학적 훈련을 한 이후에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앞 부분에서 밝힌대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이 책이 갖고 있는 이론적 약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두 지평이라는 말 자체가 가다머라는 철학자의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가다머의 이론에 따르면 텍스트에 대한 이해는 텍스트의 지평과 독자의 이해의 지평이 융합될 때 이해가 발생한다고 본다. 이를 "지평들의 융합"(fusion of horizons)이라고 칭한다. 띠셀톤의 이론에는 저자나 저자의 의도에 대한 지평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 목회학 석사과정에서 해석학을 배울 때에는 저자의 의도를 찾는 것을 중요한 해석의 목표로 삼는데, 그런데 저자는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일까?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20세기 중반까지 성서학에서 성경해석의 도구로 사용해온 역사비평학의 근본 전제를 이해해야 알 수 있다. 자료 비평, 양식 비평, 편집 비평 등이 만들어놓은 결과가 뭔지 알아야 한다. 이 세 가지 역사비평학적 방법론들은 저자의 의도를 찾는 것을 가장 중요한 해석의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 자체에서 저자의 의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이들 비평 방법론들은 다른데서 저자의 의도를 찾는다. 자료 비평은 성경에 사용된 자료에 근거하여 성경 그 자체가 아니라 성경이 사용하고 있는 원자료에서 저자의 의도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료를 추적하면서 구약학계는 J, E, D, P라는 자료를 가설로 내놓는다. 신약학계에서는 복음서를 위해서 Q자료를 내놓는다. 그런데 이런 자료를 통해서 진짜 저자의 의도를 찾을 수 있는가?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Q자료를 통해서 예수님의 원래의 말씀을 재구성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설사 그런 걸 찾아냈다손 치더라도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것이다.


양식 비평은 오랜 세월동안 전해내려온 구전 전통을 추적하여 원래의 양식에서 저자의 의도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편집 비평은 편집자의 신학적 의도에서 저자의 의도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이런 시도들은 결국 원래 저자의 의도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이의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역사비평학이 남긴 유산은 저자의 의도에 대한 불가해성만 남기게 되었다. 남는 것은 텍스트와 독자만 남을 뿐이다.


역사비평학의 한계를 비평학자들이 스스로 느끼고 20세기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방법론들은 문학 비평, 구조 비평, 수사 비평, 서시 비평, 독자반응비평 등 다양한 공시적 비평 방법론들이다. 지금 와서는 후자의 방법론들이 성경해석학의 주된 방법론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최근의 방법론들은 성경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훨씬 잇점이 있다. 그런데 이들 접근법들은 주로 텍스트나 독자만을 주로 다룬다. 여기서도 저자의 의도는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해석학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해석학의 새 지평들> 이후에 나온 Kevin J. Vanhoozer의 Is There a Meaning in This Text?를 추천한다. 이 책은 인간 저자의 의도 뿐만 아니라 신적 저자의 의도까지 다루는 해석학적 균형을 회복시켰다. 앞으로 <두 지평>을 읽는 독자는 이 책을 함께 읽기를 권한다. 그러면 해석학적 균형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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