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예언서 해석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

2018년 2월 5일 업데이트됨


오래 전에 박사과정에서 공부할 때 한 유대인 선교사를 만났다. 그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에게 했던 질문과 그가 말한 답변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물었던 질문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떻게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고, 어떻게 유대인 선교사가 되었느냐고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가 놀라운 대답을 했다. 자신은 어릴 때부터 유대교 교인이었는데, 회당에서 정해진 성경을 읽을 때 꼭 이사야 53장을 읽을 차례가 되면 읽지 않고 건너뛰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날 호기심에 이사야 53장을 혼자서 읽던 중에 바로 이곳에서 말하고 있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되어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자 그는 신앙 때문에 가정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한 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때 내가 느낀 점은 이사야 53장은 예수님 십자가 사건을 아는 사람이 읽으면 여기에 나오는 그가 곧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아차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사야 53장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렇게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찔리고 상하시고 우리의 평화를 위해 징계를 받으신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친다(4-5절).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이 바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당한 고난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6절).


한 유대인 개종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 소위 복음주의자라고 하는 신학자가 이사야 53장을 해석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가 막혀서 오늘날 예언서 해석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WBC 주석의 대부분은 건전하고 학문성이 높은 좋은 주석이다. 그런데 어떤 주석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WBC 구약 편집장인 John D. W. Watts가 쓴 이사야서 주석을 보면,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고난의 종을 다리우스의 왕위 계승을 지지했던 어느 무고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주석하고 있다(228쪽). 와츠가 이런 주석을 하게 된 배경에는 오랜 세월동안 구약학계가 예언서의 지칭대상을 원래의 역사적 배경에서 찾으려는 해석의 전통에 기인한 것이다. 나는 이런 해석의 전통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물론 이사야 40-55장의 고난의 종에 대한 지칭대상이 때로는 이스라엘로 때로는 메시아로 때로는 다른 지칭대상으로 바뀌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사야 53장은 앞의 유대인 개종자가 깨달았듯이 메시아에 대한 분명한 예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석학적 돌파구가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언어학이 발달하면서 과거에 ‘말과 지칭대상’으로 바로 연결해 생각하던 것을 이제는 의미의 삼각형에 따라 ‘말, 의미, 지칭대상’이라는 삼각구도 속에서 이해한다. 나는 박사과정 시절부터 오랜 세월동안 이에 대해서 연구한 끝에 과거에 SBL과 복음주의신학회 등에서 논문을 발표한 이후에 몇 해 전에 <성경과 신학>에 논문이 실리게 되었다. 신학도 여러분께 아래에 링크한 글을 꼭 일독하도록 권한다.


* "역사적 문법적 해석의 한계 극복하기: 이사야 53장을 시험 사례로", 「성경과 신학」 제76권 (2015), 1-33.


(논문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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