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에 모인 어느 학회에 참석하여 주제발표를 들을 때 있었던 일이다. 발표를 마친 후 청중석에서 질문을 받았는데, 어느 교수가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학회들마다 논문을 발표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중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논문이 요시야의 종교개혁이었다고 한다. 그날도 주제 발표자는 요시야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구약시대의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이나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실패한 종교개혁이 아니냐. 구약에 이들 외에 종교개혁에 성공한 사례가 없느냐고 발표자에게 질문을 했다.
나 자신도 구약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종교개혁의 모델을 뽑으라면 당연히 요시야의 종교개혁이라고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그날 그 교수의 질문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히스기야나 요시야는 탁월한 종교개혁자들이었지만 이들의 종교개혁은 당대로 끝나버린 종교개혁들이었다.
히스기야는 위대한 종교개혁을 하여 우상들을 제거하고 절기를 회복시키고 유다의 신앙을 회복시켰지만 그의 아들 므낫세는 남 유다의 어떤 왕보다 악한 왕으로 등장하여 아버지의 개혁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오히려 므낫세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반드시 유다를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은 당대에는 성공했지만 한 세대를 넘어가지 못한 어떤 의미에서 실패한 종교개혁이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통해서도 배울 점은 많다. 그가 성전에서 발견한 말씀을 들으면서 옷을 찢으며 회개하고 이스라엘 땅의 우상을 타파하고 신앙을 회복시킨 것은 위대한 종교개혁의 모델이다. 그의 말씀에 대한 회개의 반응과 개혁은 길이 기억될 만하다. 그런데 그는 바로 느고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 그의 개혁의 불씨는 곧 꺼지고 만다. 역시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한 종교개혁에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후대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종교개혁은 없는가? 마르틴 루터가 500년전 종교개혁을 통해 부패한 중세교회를 개혁하고 개신교가 세워져 전 세계로 퍼져나게 된 것처럼 이렇게 항구적인 영향을 미친 구약시대의 종교개혁은 없는가?
구약 시대에 분명히 그런 종교개혁이 있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었다. 루터는 말씀 연구를 통해 당시 교황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루터는 말씀을 통해 면죄부를 통해서 죄가 용서받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1517년 이전에 루터는 이미 여러 번 이런 관행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루터의 지속적인 권고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95개 조항을 비텐베르크성 교회 문에 달게 된 것이다.
루터는 말씀 연구를 통해 중세의 행위 구원론을 버리고 오직 믿음을 통한 구원을 주창하게 되었다. 그리고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당시 평신도들이 루터의 말씀 해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옹호하였기 때문이다. 루터의 말씀 연구와 선포 그리고 평신도들의 적극적은 참여가 없었다면 결코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구약시대에도 이런 양면적인 협동으로 위대한 종교개혁을 일으킨 계기가 있었다. 바로 에스라,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이었다. 에스라,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지 약 80-100년 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들이 돌아왔지만 유대 땅에 있었던 이들의 신앙상태는 포로로 잡혀가기 직전의 상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성전은 지었지만 성벽이 무너져 있고 성문이 불타버렸기 때문에 언제나 적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적의 위협 속에 살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고관들 중에는 인접국가의 고관들과 내통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니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사역을 하지 않았다. 안식일도 제대로 준수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변의 이방인들과 통혼을 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절기들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이스라엘의 신앙은 꺼져가는 심지처럼 껍데기만 남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의 위기를 에스라, 느헤미야의 개혁을 통해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그 개혁의 불씨는 제2성전기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성경학자 루터처럼 에스라도 당대의 성경학자였다. 에스라의 결심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10). 이 에스라의 결심 속에서 루터의 결심을 읽는 듯하다. 느헤미야서에 따르면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지속적으로 말씀을 풀어서 가르친다.
에스라의 결심만으로는 이 시대의 개혁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듣고 실천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다. 7월 1일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이들은 먼저 에스라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도록 요청한다. 이들은 말씀을 펼 때에 경외감을 갖고 일어선다. 이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눈물로 회개한다. 7월 1일 아침부터 정오까지 약 6시간 동안 서서 말씀을 듣는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볼 수 있다.
나중에 이들 중 지도자들이 다시 에스라를 찾아와서 말씀을 더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이들은 말씀을 더 들으면서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7일 동안 매일 말씀을 또 듣게 된다. 이들은 24일 다시 모여 말씀을 들으면서 대대적인 회개를 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말씀을 들으면서 개혁의 불씨가 서서히 집혀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점도 루터의 개혁의 과정과 흡사하다.
지속적으로 말씀을 들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을 개혁하게 된다. 이방인들과 절교하게 되고 더 이상 통혼을 하지 않게 되었고, 십일조를 드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성전 사역이 회복되었고, 안식을 지키지 않던 이들이 안식을 철저히 지키게 되고, 율법대로 절기도 준수하게 되었다.
에스라,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은 그 이후에 항구적인 영향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미치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철저한 결혼관과 안식일관과 절기준수와 성전 기능 회복이 이들 개혁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포로 후기의 허물어져가던 신앙이 다시 회복된 것은 바로 에스라, 느헤미야의 개혁을 통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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