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깊은 성경 묵상의 출발점은?

2019년 6월 27일 업데이트됨


성경을 깊이 묵상하기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할 방법은 무엇일까? 본문의 뜻을 깨달을 때까지 본문 자체를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지던 본문도 반복해서 읽어보면 서서히 그 뜻을 깨닫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다가 막히면 바로 주석을 찾아본다. 성경 자체의 의미를 깨닫기 전에 먼저 주석부터 찾아보는 것은 바른 성경 묵상법이 아니다. 주석들도 비교해 보면, 어떤 본문에 대한 설명은 주석가마다 해석이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주석가의 의견을 묻기 전에 먼저 우리는 본문을 있는 그대로 깊이 묵상하면서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 방법이 본문의 의미를 올바로 파악하는 정도(正道)이다.


1.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


고사성어 중에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글을 100번 반복해서 읽으면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성경해석도 뜻을 파악하고 적용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성경 본문을 정하고 나면 뜻이 드러날 때까지 반복해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에게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과제를 내어줬을 때,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핵심 메시지 파악이다. 핵심 메시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과제를 제출하는 학생들 비율이 다른 어떤 본문 분석 과제들보다 대체로 낮다. 그 이유는 많은 경우에 본문을 충분히 읽고 소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본문을 올바로 묵상하기 위해서 될 수 있으면 수십 번, 아니 백 번이라도 반복해서 읽으면서, 본문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할 과제이다. 얼마나 본문을 읽어야 할까? 눈을 감고 본문을 생각하면 핵심 메시지가 머리에 선명하게 떠오를 때까지 본문을 읽어야 한다.

2. 여러 번역본을 사용하여 반복해서 읽으라.


그런데 본문을 반복해서 읽을 때,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한 가지 번역본만 사용하지 말고 반드시 다양한 성경 번역본을 사용하여 묵상할 필요가 있다. 왜 다양한 번역본을 사용해서 읽어야 할까? 다양한 번역본을 비교해 보면 성경 간에 때로는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데, 어떻게 해서 성경 번역본들 간에 차이가 있을까? 성경 무오설은 번역본의 무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성경의 원래 저자가 기록한 원전 상의 무오를 말하는 것이다. 성경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전수되어 왔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손으로 필경사들이 써서 전수한 것이다. 그러니 필사 과정 중에 실수가 포함될 수 있다.


사본학을 연구하는 성경학자들은 어느 필사본이 보다 원문에 가까운 것인지 계속 연구해 오고 있다. 번역자에 따라 어느 필사본에 더 권위를 두느냐가 다르기 때문에 번역본들 간에 작은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 무오설 때문에 성경 번역본들 비교 자체에 대해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우리가 갖고 있는 한글 성경들은 번역본 중에 하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개역한글판 성경에서 개역개정판 성경으로 새로운 번역을 내놓은 것은 개역한글판이 가진 번역 상 오류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개역개정판은 개역한글판이 가진 오류들을 모두 고치지는 못했다.


사본학이 발전하면서 좀 더 성경 원전에 가까운 번역을 하기 위해서 그간 성경학자들은 힘써 왔다. 그래서 더 나은 번역본들과 비교해 보면 원래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원전의 의미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 다양한 성경 번역본들을 비교해 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반복해서 읽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잘못 번역된 부분을 반복해서 읽는다고 그 뜻이 그냥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비교해서 읽어보아야 할 번역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3. 추천 번역본들


한글 성경 중에는 개역한글판, 개역개정판, 새번역, 공동번역, 바른 성경 등을 비교해 보면 좋다. 영어 독해력이 되는 사람들은 영어 성경들을 사용하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영어 번역본들이 한글 번역본들보다 대체로 더 정확하게 번역하고 있다. ESV, NASB, NIV, NRSV, RSV 등의 번역본을 추천한다. 앞의 세 가지는 보수진영에서 번역한 번역본이고, 뒤의 두 가지는 진보주의 학자들이 번역한 것이다. 특히 ESV를 추천하는데, 이는 RSV의 정확한 번역을 대부분 수용하였지만 신학적인 문제들을 고쳐서 번역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번역본 비교에 가장 좋은 방법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를 배워서 직접 번역해 보는 것이다. 원문을 직접 읽고 비교해 볼 수 있으면 최상의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실력에 도달하려면 상당한 시간동안 원어를 공부해야 한다. 이는 신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한두 학기동안 원어를 배웠다고 원문을 쉽게 해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원어를 대충 공부하고 원문을 들먹거리는 것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이 된다. 실제 어느 분이 목회자들이 원어를 사용한 것을 분석한 적이 있다. 20여 건을 찾아보았는데, 모두 엉터리로 설명한 것을 발견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잘 아는 언어로 된 번역본을 비교해 보는 것이 더 낫다.


4. 번역본 비교의 실례


이제 몇 개의 본문을 선택해서 번역본 비교가 왜 중요한지 검토해 보고자 한다.

<로마서 3:25>

[개역개정]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NIV] “God presented Christ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the shedding of his blood-to be received by faith.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righteousness,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NRSV] “whom God put forward as a sacrifice of atonement by his blood, effective through faith. He did this to show his righteousness, because in his divine forbearance he had passed over the sins previously committed;”

[SBLGNT] " ὃν προέθετο ὁ θεὸς ἱλαστήριον διὰ πίστεως ἐν τῷ αὐτοῦ αἵματι εἰς ἔνδειξιν τῆς δικαιοσύνης αὐτοῦ διὰ τὴν πάρεσιν τῶν προγεγονότων ἁμαρτημάτων "

지면상 로마서 3장 25절을 네 개의 번역본만 비교하였다.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모두 ‘화목제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새번역과 NIV, NRSV는 모두 ‘속죄제물’(sacrifice of atonement)로 번역하고 있다. 공동번역은 그냥 ‘제물’로 번역하고 있고, 다른 영어 번역본들(propitiation – NASB, ESV; expiation - RSV)도 다른 단어를 사용하지만 대부분 ‘속제(제물)’란 의미로 번역한다.


원문은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여기에 사용된 원문은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이라는 말인데, 이는 ‘속죄소’ 혹은 ‘속죄의 수단’이라는 의미이다(BAG, 375). 대부분의 번역본들은 로마서 3장 25절에 사용된 말이 ‘화목제물’보다 ‘속제제물’이란 뜻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본문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속죄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의 제사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화목제물’이라는 뜻보다 ‘속죄제물’이라는 뜻이 본문의 문맥에 적합하다. 구약의 다섯 가지 제사 중에 화목제는 주로 하나님과의 교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반면, 속죄제나 속건제는 죄 용서와 관계된다. 번역본 비교를 통해 본문의 바른 번역을 확인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이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한 대속적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다음 본문은 어느 목사가 생전에 입에 침을 튀기면서 목사의 사명을 강조한 본문이다. 그런데 그가 당시에 사용한 성경은 개역한글판이었다.

<에베소서 4:11-12>

[개역개정]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개역한글]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새번역]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공동번역]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 활동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자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ESV; RSV; NRSV] “to equip the saints for the work of ministry, for building up the body of Christ,”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봉사의 일을 위해 성도들을 구비시키는 것이다.)

[NIV] “to prepare God's people for works of service, so that the body of Christ may be built up.”

[SBLGNT] “ πρὸς τὸν καταρτισμὸν τῶν ἁγίων εἰς ἔργον διακονίας, εἰς οἰκοδομὴν τοῦ σώματος τοῦ Χριστοῦ,”

에베소서 4장 11-12절에 보면 왜 목사와 교사를 주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2절에 그 이유가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한글 성경의 12절 번역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개역한글판에 따르면 12절의 3개의 구절이 모두 ‘~하며’로 번역되어 대등절로 연결되어 있다. 대등절은 모두 동등한 관계로 연결된 구절이다. 위에서 말한 목회자는 목사의 일차적인 사명이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개역한글판에 나오는 대등절의 순서에 호소했다. 그런데 이에 근거한 호소가 정말 타당할까? 대등절은 의미상 동등하게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먼저 나온다고 항상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개역한글판의 문제점을 알고 개역개정판은 첫 구절에 나오는 연결어를 ‘~하여’라고 번역하고 있고, 두 번째 연결어는 ‘~하며’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새번역도 동일함). 앞 구절의 연결어를 ‘~하여’라고 번역함으로써 나머지 두 구절은 결과적인 뜻으로 이해된다. 만약 이에 호소한다면 목사의 사명이 성도를 온전케 하는데 있다는 주장에 훨씬 더 설득력을 실어줄 것이다. 이 작은 한 단어를 바꿈으로 말미암아 이에 대한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의 의미는 확연히 달라진다.


그런데 원문의 뜻이 과연 그런 뜻일까? 원문의 의미는 뒤의 두 구절을 대등절로 연결할 수 있는 관계로 볼 수 없다. 12절 원문에 사용된 세 개의 전치사 ‘프로스’, ‘에이스’, ‘에이스’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상당히 달라진다. 이 세 전치사는 모두 목적을 의미하는 전치사이다. 뒤에 사용된 ‘에이스’라는 동일한 전치사가 의미는 같지만 서로 간의 관계는 대등 관계로 연결된 것이 아니다. 번역의 난점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영어 번역본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 전치사들의 관계를 정확하게 규정하여 번역하고 있다. ESV, NRSV, RSV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봉사의 일을 위해 성도들을 구비시키는 것이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NIV의 번역도 의미상 큰 차이가 없다. 영어 번역본들은 위의 세 전치사들이 목적을 의미하는 구절을 이끈다는 점에 착안하여 서로 목적 관계로 연결시키고 있다. 공동번역이 영어 번역본과 비슷해 보이지만 마지막 두 구절을 결과적인 의미로 번역하기 때문에 원문의 뜻과는 거리가 있는 번역이다.


에베소서 4장 12절의 올바른 번역은 목사와 교사의 사명이 무엇인지 밝히는데 대단히 중요한 구절이다. 원문에 따르면 목사와 교사를 세우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되 봉사의 일을 잘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운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목적 하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임을 의미한다.

이런 뜻과 ‘목사의 일차적인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이다. 그러면 봉사의 일도 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도 세우게 된다.’는 말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성경을 자세히 읽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성경 본문을 통해 의도하신 뜻을 밝히 깨달아 아는데 있다. 우리가 말씀의 의미를 올바로 깨달아야 우리의 삶에 올바로 적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적용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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