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구원’이라는 말을 얼마나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발견하면 놀랄 것이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몇 가지 실례를 보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마 8:25).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마 9:21).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마 14:30).
이 네 성경 구절에 사용된 ‘구원’이라는 말이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은 영적 구원을 의미하고, 8장 25절은 배가 풍랑에 휩쓸려 빠져 죽을 위기에서 제자들이 살려달라는 말이다. 9장 21절은 병 고침을 의미하고, 14장 30절은 베드로가 바다에 빠져 들어가면서 주님께 건져달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혹시 헬라어 원문이 다른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구원’이란 의미로 사용된 헬라어는 모두 ‘소조’라는 동일한 동사이다.
단어나 구절이나 문장의 뜻은 반드시 문맥을 통해서 파악해야 한다. 문맥을 떠난 성경해석은 이단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신천지 이단이 얼마나 자주 문맥을 떠난 해석으로 미혹하고 있는가? 이들은 ‘비둘기’(정결한 짐승)하면 성령으로, ‘까마귀’(부정한 짐승)하면 사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선지자 엘리야에게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먹인 것은 까마귀인데(왕상 17장), 이는 사탄이 먹인 것인가? 성경에 하나님은 자주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시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욥 38:41; 시 147:9; 눅 12:24). 이는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먹이를 주시는 분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성경해석의 기본 중에 기본은 말씀이 나오는 문맥을 올바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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