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December 05, 2018
성전이 파괴된 것도 이스라엘 역사에 엄청난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떠나버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에스겔 8-11장이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레스의 칙령(주전 538년)으로 돌아왔지만 성전이 완성되기 전에 이들은 여전히 포로 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스가랴와 학개는 선포하고 있다.
December 01, 2018
예레미야가 예언한 포로생활 70년은 어떤 의미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1차 포로로 잡혀간 주전 605년부터 귀환 연도인 주전 538년까지 계산하면 67년이 되고, 제2차로 포로로 잡혀간 주전 597년부터 계산하면 59년이 되고, 제3차로 포로로 잡혀간 주전 586년부터 계산하면 48년이 된다. 그렇다면 예레미야가 예언한 포로생활 70년은 어림수인가? 아니면 상징적인 수인가? 아니면 문자적인 70년은 가능성이 없는가? 이 글은 성전이 파괴된 주전 586년부터 성전이 재건된 주전 516년을 70년 예언의 성취로 본다.
March 26, 2018
필자의 저서 <히브리 시인에게 설교를 배우다>의 핵심적인 내용을 기독교개혁신보에서 소개한 글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설교 언어는 히브리 시인들이 자주 사용한 그림 언어와 대구법임을 밝힌다. 그림 언어가 어떻게 설교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대구법은 어떻게 감동을 일으키는지 그 원리를 소개하고 있다.
February 07, 2018
영화 밀양과 꼭 빼어닮은 안태근 사태를 보면서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용서와 회개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밝힌다. 특히 교인이라고 하면서 지속적으로 다른 성도를 괴롭히는 뻔뻔한 기독교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 해법을 찾아본다.
November 09, 2017
어느 평범한 설교자의 설교가 어느 날 갑자가 청중의 집중력을 사로잡는 비범한 설교로 변했다. 그 비결은 그가 사용한 영화 한 클립이었다. 여기 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청중들은 감동의 도가니로 들어갔다. 그가 사용한 영화의 효과를 히브리 시인이 사용한 그림 언어라는 수사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이다.
October 17, 2017
설교자들이 왜 설교 표절의 유혹을 받을까? 한국교회 설교자들이 해야할 설교가 많기 때문에 설교 표절의 유혹을 받기 쉽다. 그리고 유명 설교자의 설교가 좋아보여 유혹을 받기도 한다. 또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 남의 설교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또한 유혹의 요인이다. 그러나 설교자가 매일 성실하게 성경을 연구한다면 설교 표절의 유혹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특히 성경해석학의 원리에 따라 성실하게 말씀을 준비하는 기본으로 돌아가도록 설교자들에게 권고한다.
October 10, 2017
오늘날 설교자들이 가장 흔히 범하는 번영신학적 오류는 설교의 적용을 물질적 번영으로 귀결시키는 오류이다. 그 형태가 너무나 미묘하기 때문에 잘 분간하기 어렵다. 필자의 제자가 어느 교회에서 본 신앙생활 수칙이 번영신학을 그대로 담고 있어 이에 대해 쓴 글이다.
July 04, 2017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맥추절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칠칠절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글성경의 오역으로 인하여 생긴 잘못된 이해이다. 한국교회 맥추절의 진짜 유래를 추적해본다.
December 05, 2016
부패한 권력에 기독교인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로마서 13장의 말씀을 주로 악용하여 무조건 권력에 대해 순종하라고 어떤 사람들은 가르치는데 과연 올바른 가르침인가? 성경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밝힌다.
July 08, 2016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 이야기'(요 8:3-11)는 범죄자들에 의해서 가장 악용되는 성경구절 중에 하나이다. 예수님도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용서하셨는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런데 본문을 조금만 더 깊이 읽어보면 이는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본문이 아님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오히려 여인으로 하여금 다시는 범죄치 않도록 경고하셨고, 예수님은 위선적인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향해 신랄한 비판의 칼날을 휘두른 것을 보면 이 본문으로 범죄인들이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
June 25, 2016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 18:22)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 20:13)
동성애 옹호자들은 이렇게 명백하게 동성애에 대해서 금지하고 있는 본문을 왜곡해서 해석한다.
이는 가부장적인 문화의 산물이고, 이는 의식법의 일부이고, 이는 우상숭배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합의에 의한 동성애에는 해당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의 3가지 주장 모두 다 거짓임을 이 글은 밝힌다.
June 23, 2016
소돔성 사람과 기브아 사람의 문제가 폭력과 환대 거부와 강간과 관계된 것인가, 동성애와 관계된 것인가? (창 19장; 삿 19장). 본문을 관찰해 보면 폭력과 환대 거부와 강간 등도 문제이지만 이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동성애의 문제였다. 양쪽 본문에 사용된 단어 "야다"는 맥락상 "성관계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소돔성 사건(창19장)과 기브아 사건(삿19장)은 전형적인 장면(type scene)으로서 후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한 모습을 소돔성 사람의 타락상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게 되자 멸절당한 소돔성 사람의 모습과 꼭 같다는 사실을 전형적 장면으로 보여준다.
June 21, 2016
최초의 가정제도를 밝힌 창세기 2:20-25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쪽으로 사용될 수 없다. 본문에는 분명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의미한다. 어디에도 동성간 결혼을 암시하지 않는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명하신 문화명령을 이룰 수 있다. 동성간 결혼으로는 문화명령을 이룰 수 없다.
May 27, 2016
제자훈련 열심히 하는데 왜 인격적 파산을 경험할까? 근본 원인은 제자훈련의 균형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영성, 사역, 비전쪽은 대체로 잘 하고 있으나 도덕성 훈련이나 거룩한 지성 훈련이 매우 빈약하기 때문에 도덕성과 지성에 문제가 있는 제자훈련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 이 글은 한국의 대표적인 제자훈련 프로그램들을 성경적 관점에 분석한 글이다.
October 11, 2015
필자의 저서 <히브리 시인에게 설교를 배우다>에 대해 기독일보에서 보도한 내용이다. 특히 그림 언어의 효과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였다.
May 17, 2016
장로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고 감리교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 이 두 극단을 조화할 방법은 없는가? 코넬리우스 반틸 교수는 이 두 극단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제한 개념"을 통해 성경의 가르침을 적절하게 조화시킨다. 절대주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책임을 무시해서는 안 되고, 반면에 인간의 책임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