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석학(New Hermeneutic)의 주관주의적 위험성

"내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해석하게 하라."

이 말은 불트만의 2제자 푹스와 에벨링이 주창한 신해석학(New Hermeneutic)의 표어와 같은 말이다.



하나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게 하라는 취지로 들으면 정말 좋은 말이다.

그리고 성경해석의 결과는 당연히 해석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아마 정상적인 성경해석자라면 이를 결코 뒷전에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나를 해석하게 하라"라는 말에는 상당한 모순이 내재하고 있다.

정말 성경 텍스트의 이해 없이 성경이 나를 바로 해석할 수 있는가? 이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본 사람은 안토니 띠셀톤이다.


성경본문에 대해 '생각'(해석)하기 전에 먼저 '들으라'는 이 말은 듣기에는 좋아보이지만 여전히 해석자 자신의 역사와 언어의 조건성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즉 이런 해석은 모든 것을 "내가 태어난 역사적 세대란 시대의 산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A. C. Thiselton, "The New Hermeneutic," in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Essays on Principles and Methods, ed. I. H. Marshall [Grand Rapids: Eerdmans, 1977]: 308-333.).


극단적인 경우에는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가 곧 본문의 의미다"라고 주장하는 주관주의에 빠질 수 있다. 이게 실제 신해석학이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이다.


이런 동일한 오류를 전수한 성경 묵상법이 바로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QT이다. 많은 큐티 책들은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이 뭔가?"라고 전제를 달고 말씀을 묵상한다. 말씀으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은 좋지만 해석의 과정이 없는 적용은 역시 신해석학이 갖는 동일한 주관주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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