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개관 클래스에서 신명기 21장을 다룰 때, 꼭 하는 얘기가 있다. 하나님은 한 생명이 무고히 죽게 되었을 때, 이를 얼마나 심각하게 다루시는가에 관한 얘기다.
구약성경은 고의적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범인이 잡히지 않을 경우가 문제이다. 무고한 피를 흘리게 되면 거룩한 땅이 부정하게 된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래서 무고히 흘린 피에 대해 반드시 속죄를 해야 했다.
어떤 피살자가 발견되었지만 범인이 잡히지 않았을 경우에 그곳으로부터 거리를 재어 가장 가까운 성읍에 살고 있는 장로들이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암송아지를 전혀 경작해본 적이 없는 물이 흐르는 깊은 골짜기로 끌고 가서 송아지의 목을 꺾어 죽인 후 피에 손을 씻으면서 자신들이 피를 흘리지 않았으니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면 무고히 흘린 피에 대해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고 규정한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귀중하게 보시는지 알 수 있다. 무고히 흘린 피에 대해서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다.
송아지의 목을 꺾어 죽이면 송아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왜 이렇게 하도록 규정했겠는가? 한 생명이 무고히 죽어갈 때, 깊은 골짜기에서 송아지가 죽어가듯이 무고한 생명도 그렇게 죽었기 때문이다. 사실 범인이 이렇게 죽어야 하는데, 범인은 잡히지 않았으니 송아지가 죄인의 죗값을 대신 치르고 죽은 것이다. 이것이 구약성경의 대속의 원리이다. 이 송아지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예표적으로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송아지의 목을 꺾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
신명기 21장은 오늘날 낙태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를 깨닫게 한다. 한 생명의 무고한 죽음도 이렇게 다루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 땅에 수십만 태아의 생명이 무고하게 죽어가고 있는데, 얼마나 이 땅을 황폐케 하겠는가?
오늘날 대한민국 땅에 낙태로 죽어가는 태아의 숫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다. 복지부에 따르면 숫자가 상당히 적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에 의하면 70-80만은 되리라고 추산한다. 아마 어림잡아 최대 50만은 될 것이라고 본다(2017년 연합뉴스 보도).
낙태 금지법이 낙태를 완전히 차단한 것은 아니다. 모자보건법이라고 해서 강간, 준강간, 근친상간, 부부의 건강상 등의 사유가 인정될 경우에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제 낙태를 법으로 금하지 않으면 부부의 선택권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더 많은 생명들이 무고히 죽어가겠는가? 이번 대법원 판결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가장 기본적인 법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우리나라는 낙태를 법으로 금하고 있지만 실제 기소되어 처벌된 경우는 단 한 건 외에 없다고 한다. 현행대로 하더라도 거의 처벌받지 않는데, 굳이 법의 안전망을 풀어버릴 이유가 있을까?
무엇보다 기독교인들은 신명기 21장을 기억하고 이 땅에 무고히 흘리는 피의 속죄를 위해 중보 기도할 책임이 있다. 어린 암송아지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목을 꺾는 것보다 더 처절한 고통 가운데 우리의 죄를 위해 죽었다. 그의 고귀한 핏값을 믿고 우리는 중보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이 땅이 무고하게 흘린 피로 부터 정결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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