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역사는 인간의 이성과 항상 충돌하는가?

성경에는 인간의 이성적 활동을 뛰어넘는 수많은 성령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복음의 본질이 모두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뛰어 넘는다. 동정녀 탄생은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도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는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더욱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도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는 사건들이다. 그래서 이런 복음의 핵심들은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해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다.


성경의 이런 초이성적인 면들 때문에 어떤 사람은 성령님의 역사와 인간의 이성적 활동을 모순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오직 성령 충만을 강조하고 인간의 이성적 활동 자체를 맹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성경을 묵상할 때도 오로지 기도와 성령님의 역사만을 강조하고 인간의 이성적 활동을 전혀 개입할 여지를 두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이런 접근이 타당한 것인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심지어 성경을 연구하는 것조차 인간의 이성적 활동으로 싸잡아 비난하기도 한다. 오직 기도로 부르짖고 성령 충만하여 성경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맞다. 인간의 이해에 있어서 성령님의 역사가 중요함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성령님은 ‘깨닫게 하시는 영’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가르침을 받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성령님은 우리의 이성적 활동도 때론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모른다. 성령님은 말씀을 깨닫게 하시되 우리의 이성적 활동을 사용하셔서 때론 깨닫게 하신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 성경공부가 필요하고 성경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면, 개역개정판 성경에 기록된 성경번역 상의 오류를 성령님은 어떻게 깨닫게 하시는가? (성경의 무오는 원전상의 무오를 말하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로마서 3장 25절에 나오는 ‘힐라스테리온’이라는 말을 개정개정은 ‘화목제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원문의 뜻은 ‘속죄제물’이란 뜻이다. 표준새번역, 바른성경, NIV, NRSV 등은 이를 바르게 번역하고 있다. 이를 바로 번역할 때, 로마서 3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이런 깨달음은 이 본문을 잡고 철야 기도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부지런한 성경연구를 통해서 깨닫게 된다. 성령님은 우리의 부지런한 연구라는 이성적 활동을 활용하셔서 이의 의미를 깨닫게 하신다. 성령님의 역사를 인간의 이성과 항상 상충하는 것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좁은 생각이다.

이는 인간의 이성(reason)과 이성주의(rationalism)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그릇된 생각이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도 창조하시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동물에게는 인간의 이성과 같은 고도의 이성적 활동이 없다.


종교개혁자들은 믿음과 이성과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믿음은 인간의 이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다.’라고 잘 표현했다. 어거스틴은 믿음에 대한 지적인 탐구를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이라고 했다.


큐티를 할 때도 기도와 성령님의 역사를 먼저 간구해야 하지만 우리의 이성의 활동을 사용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알고 부지런히 말씀을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렇게 할 때, 신비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다.


#이성(reason) #이성주의(ra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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