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쓸 때 꼭 들어가야 할 기본 원칙 여섯 가지가 있다.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라는 육하원칙이다(표준국어대사전, “육하원칙”). 이 여섯 명의 하인들은 약방의 감초처럼 요긴하게 사용된다. 기사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계획한다면 육하원칙에 따라 작성하면 내용이 거의 누락되지 않는다. 영어로는 5W1H라고 한다(Wikipedia, "Five Ws"). 육하원칙은 글을 쓸 때뿐만 아니라, 글을 분석할 때도 매우 유용한 도구들이다.
성경 본문을 분석한다면 육하원칙에 따라 질문을 던지면서 읽게 되면 그 본문이 말하는 내용을 매우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본문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문을 분석할 때는 전략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읽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유대인들이 토라나 탈무드를 공부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 ‘하브루타’라는 방법인데, 이는 둘씩 짝을 지어 질문을 던지면 토라나 탈무드를 연구하는 방법이다. 이는 성경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이다. 요즘 교육학에서 하브루타 학습법의 중요성을 깨닫고 수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브루타식 토론법은 심도 있는 학습을 위해 매우 유용한 도구이다. 하브루타 학습법의 중심에는 ‘질문법’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브루타식 수업의 성공여부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질문을 던지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요한복음 3장 1-16절의 내용을 육하원칙으로 질문을 던지면서 분석해보자.
1. 누가
본문을 향해 ‘누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첫 절부터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1절).
제일 먼저 ‘니고데모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그가 바리새인이라고 하는데,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도 생긴다. 또 ‘유대인의 지도자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의문도 생긴다.
이렇게 ‘누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우리가 모르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연결고리를 달아놓게 된다. 성경에 대한 정보는 우리가 질문을 던지는 것만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질문하지 않으면 결코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이렇게 질문을 던져봐야 그 다음 단계에 어떤 책을 찾아봐야 하는지 알게 된다. 이런 질문은 대부분 ‘성경 사전’을 찾아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
2절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가리켜 ‘랍비여’라고 칭하는데, ‘랍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10절에는 예수님이 니고데모를 가리켜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칭하는데, ‘이스라엘의 선생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도 던질 수 있다. 11-12절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너희’를 대비시키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이고, 너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던질 수 있다.
13-14절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인자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16절에는 ‘독생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단어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은 ‘독생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성경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정보가 나오면, 반드시 질문을 던져보라. 등장인물을 잘 알아야 본문의 의미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
2. 언제
‘언제’라는 질문은 때와 관계된 질문이다. 때와 관련된 말이 나오면, 꼭 언제라는 질문을 던져서 그 때를 확인해보라. 이는 사건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2절에 보면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왜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요한복음에 ‘밤’이라는 시간이 주는 독특한 의미가 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 ‘밤에’라는 말에 대해 질문을 던져봐야 알 수 있다.
카슨은 여기에 사용된 ‘밤’이란 의미에 대해서 아마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왔을 수도 있지만, 요한복음에서 ‘밤’은 주로 “도덕적 영적인 어둠”에 대한 은유로 사용된다고 본다(Carson, 1991: 186).
본문에 따라 시간과 관련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저자는 언제 이 편지를 쓰게 되었는가? 수신자는 언제 이 편지를 읽게 되었는가? 여행을 하고 있다면, 얼마나 걸렸는가? 사건은 얼마나 오래 계속되었는가? 계절은 언제인가? 이런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모든 사건은 특정한 때와 특정한 장소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때와 장소를 잘 아는 것은 사건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3. 어디서
이는 장소와 관련된 질문이다. 생소한 장소가 나오면 반드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어디서 글을 쓰고 있는가? 수신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대부분 도보로 여행을 하던 옛날 어떤 장소가 갖는 의미는 오늘날 하루면 지구 어느 곳이든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생소한 장소의 이름이 나오면 가능하면 ‘성경 지도’를 찾아보면 본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바울이 선교여행하면서 지명을 말하고 있는데, 가능하면 지도를 펴놓고 그가 움직이는 동선을 파악하면서 읽으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그의 선교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호수아서와 사사기를 공부한다면 각 지파가 어떻게 배치되었는지 성경 지도를 찾아보면서 연구한다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사사기 1장에 따르면 왜 유다 지파가 시므온 지파와 함께 행동하게 되었는지 성경 지도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삿 1:3). 에스라서를 읽는다면 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도착하는데 4개월씩 걸렸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스 7:9). 생소한 지명들은 지도를 찾아보지 않고 읽으면 위치정보가 없기 때문에 본문이 매우 막연하게 들린다.
요한복음 3장 1-16절에도 장소와 관계된 여러 가지 표현들이 등장한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왔다고 하는데, 이곳은 어디일까? 2절에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는가? 3, 5절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인가? 8절에 따르면 성령의 행방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13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어디서 온 자인가? 14절에 관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은 어디서 있었던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4. 무엇을
‘무엇’이라는 질문은 사건의 본질을 알아내는데 유용하다. 요한복음 3장 본문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이는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는 니고데모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에서 오가고 있는 핵심적인 이슈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3, 5절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는 본문의 핵심 메시지 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3절에 관해서 질문을 한다면,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무엇에 대해 질문을 하는가? 이에 대해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셨는가? 이런 질문은 관건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데 요긴하다. 무엇이라는 질문을 던져봄으로써 예수님의 답변은 니고데모의 질문에 대해 동문서답처럼 보이는 답변을 하신 사실을 알게 된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엉뚱한 답변을 하시고 계실까? 이는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하고 본문의 핵심 메시지를 파악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2절에 니고데모가 관심을 갖고 있는 ‘표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5절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특히 여기서 ‘물’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12절에 하늘의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4절에 인자도 들려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16절에 ‘세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말하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가, 아니면 죄악된 실체로서의 세상을 의미하는가?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영생’은 무슨 뜻인가? ‘믿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매우 당연시하는 말에 대해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질문들이다.
5. 어떻게
‘어떻게’라는 질문은 우리에게 방법을 가르쳐주는 중요한 질문이다. 5절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가는가? 어떻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 16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가?’라는 질문은 본문의 핵심 메시지를 파악하여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 중에 하나이다. 14-16절이 이에 대해서 답을 제공하고 있다. 예수님의 결론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는 동시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를 밝혀준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현상이기에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지만, 그 방법은 간단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요한복음 3장 1-16장을 읽지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과 예수님이 결론적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 영생을 얻는다’는 진리와 연결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니고데모가 질문하고 예수님께서 답변하시는 대화의 흐름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대화 속에 나타난 거듭남의 방법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가?’ ‘어떻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가?’ 이에 대해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답변하시는가? 결론 부분에 예수님은 그 답을 정확히 가르쳐 주신다.
6. 왜
2절의 니고데모의 질문에 대해 3절에 ‘왜’ 예수님은 이렇게 동문서답처럼 대답을 하셨을까? 왜 이 답변이 중요한가? 왜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왔는가?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관심을 갖고 찾아온 의도와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를 이끌어 가시는 의도가 다르다.
니고데모의 질문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나 이런 기적을 행할 수 없음을 깨닫고 찾아와 질문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하나님 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대답하셨을까?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신 기적 자체보다 니고데모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동문서답처럼 보이는 답변을 하신 것이다.
이후의 대화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엉뚱한 답처럼 보이는 예수님의 답변에는 비록 바리새인이지만 니고데모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한 복음적인 배려가 깔려 있다. 아울러 누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거듭남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떻게 거듭나는지 그 방법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고 있다.
14절에서는 ‘왜 예수님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이야기를 하실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은 민수기 21장 5-9절에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과 불평을 하자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 범죄한 백성들을 징계하셨다. 이들이 고통 가운데 모세에게 요청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여 뱀들이 떠나도록 요청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의 형상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도록 했다. 누구든지 장대 위에 매달린 놋뱀을 쳐다보는 자는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뱀에 물린 자들 중에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은 모두 살아났다.
장대 위에 매달린 놋뱀을 쳐다본 사람이 살아난 사건은 중요한 예표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장대 위에 매달린 저주스러운 놋뱀의 형상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본 사람들은 살아났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이에 빗대어 자신도 놋뱀처럼 십자가에 매달릴 터인데, 그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 사실을 가르쳐 주셨다.
여기서 ‘왜’라는 질문을 통해 모세가 놋뱀을 든 사건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어떻게 예표적으로 연결이 되고, ‘(예수님을) 믿음을 통한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준다.
본문을 분석할 때, 육하원칙이란 충성스러운 하인들을 잘 활용하여 효과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면,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좋은 질문이 있어야 좋은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좋은 질문은 의미 파악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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